사숙월섬여학관 - 프롤로그
2월 치고는 바람도 없고 따뜻한 날이었다.
마른 잔디로 뒤덮힌 언덕을 오르자,
눈부신 저녁해가 산골 너머로 지고있었다.
내가 뒤돌아보자 뒤를 따라 걸어오던 무라쿠모상, 요자쿠라상, 시키상, 미노리상의 얼굴이 오렌지 빛으로 물들어있다.
미노리 "맞아. 유미쨩, 확실하게 딸기 찹쌀떡 가져왔어?"
미노리상이 내 손가방 속을 들여다본다.
유미 "물론입니다. 할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걸 잊을리가 없습니다"
손가방 안에는 딸기 찹쌀떡이 잔뜩 들어있었다.
찹쌀떡의 하얀 표피 속의 커다란 딸기가 옅게 비쳐보인다.
몸 상태가 안좋아 누워계시지만, 할아버지는 딸기 찹쌀떡만큼은 드셨다.
오늘도 틀림없이 좋아하실거다.
미노리 "쿠로카게 할아버지랑 만나는것도 오랜만이다~"
웃음을 가득 띠며 미노리상이 말했다.
유미 "네, 그렇죠"
쿠로카게[1]란 나의 할아버지이며, 악을 증오하는 전설의 선닌[2]이다.
우리 다섯명은 모두 선닌의 가계이며, 악닌[3]과의 항쟁의 끝에 양 부모를 여의었다.
할아버지는 우리들은 선닌으로 키우고, 사숙월섬여학관[4]에 입학시켜주셨다.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험한 시노비 수행에 힘썼고, 전원 모두 선발 멤버가 되었다.
[1] 쿠로카게: 한때는 한조와 쌍벽을 이룰정도의 실렬을 가졌던 선닌. 악을 멸망시키는것을 과도하게 추구한 결과, 시노비의 세계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2] 선닌: 국가에 소속되어 국익을 위한 선행을 행하는 시노비. 자신의 의지로 자유롭게 시노비의 힘을 사용하지는 못하나, 굳은 결속력을 가졌다.
[3] 악닌: 암기업이나 악덕정치가에게 고용되어,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암약하는 시노비. 선악을 가리지않고 의뢰를 수행하지만, 자신의 이익이 최우선이다.
[4] 사숙월섬여학관: 유력자의 딸만이 입학 가능한 초 아가씨 학교. 아즈치 모모야마시대부터 이어져오는 초 엘리드 학교로, 학생은 모두 시노비 학과 학생이다.
유미 "자, 이제 얼마 안남았습니다. 가지요"
언덕을 조금 내려가면 할아버지가 계신다.
우리들은 뛰는 가슴을 억누르지 못하고 달려갈 것 같았다.
……그 때였다.
? "아핫핫핫핫하!!"
어디선가 호쾌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기척을 느끼고 돌아보자, 등 뒤엔 앞치마 차림을 한 노인이 서 있었다.
우리들 모두가 자세를 다잡았다.
그 노인이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금새 눈치챘기 때문이다.
작은 체형에서 보통이 아닌 양의 오라가 베어나오고 있다.
유미 "……누구십니까?"
한조 "나 말이냐? 나는 한조다"
유미 "하, 한조?"
그 이름을 듣고 나는 피가 끓었다. 다른 네명도 분명 같을 것이다.
……전설의 선닌, 한조[5].
보통 시노비 학생[6]이라면 지금 엎드려 절을해도 이상할게 없다.
하지만, 우리들에게 한조라는 존자는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할아버지로부터 몇번이고 들었기 때문이다.
……한조는 숙명의 라이벌이었다고.
[5] 한조: 국립한조학원의 개명의 유래가 되기도 한 '전설의 선닌'. 실태는 그냥 변태할아버지.
[6] 시노비 학생: 시노비학과를 다니는 학생들의 총칭. 선닌, 악닌 구별없이 시노비 학생이라 불린다. 연령제한은 딱히 없다.
유미 "우리에게 무슨 볼 일인가요?"
한조 "왠지 심심해서말이다. 심심풀이로 놀아줄 상대를 찾으려 산책중이었다"
한조는 싱긋 웃더니 갑자기 모습을 감췄다.
앗,하는 순간 나의 가슴은 뒤에서부터 격렬하게 주물러지고 있었다.
한조 "오~ 호호~ 이것은 이것은"
어느샌가 한조가 나의 뒤로 돌아와있었다.
유미 "무, 무례한 놈!"
내가 팔꿈치로 공격하려하자 한조는 재빠르게 몸에서 멀어졌다.
유미 "월섬의 선발 멤버라는걸 알고서 하는 짓입니까!"
한조 "물론. 월섬이 어느정도의 가슴을 선발했는지, 이 손으로 확인해보고 싶어서 말이다. 만지작 만지작"
양 손을 마구 휘젓더니 한조는 또 모습을 감췄다.
유미 "모두들 조심하세요!"
우리들은 주의깊게 주위를 지켜봤다.
한조 "여기란다"
목소리가 나는 방향을 보자, 한조는 무라쿠모의 등 뒤에 있었다.
한조 "만지작 만지작, 만지작 만지작"
무라쿠모 "……"
멍하니 서있는 무라쿠모상의 가슴을 주무르고 있다.
한조 "저항없는 도깨비 가면도 또한 재밌군"
유미 "멈추세요!"
내가 때려주려 하자 한조는 또다시 사라졌다.
한조 "이 과실도 맛 봐볼까"
한조는 이번에는 요자쿠라상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곧바로 양 손으로 가슴을 또 꽉 쥐고있다.
한조 "주물럭 주물럭, 만지작 만지작"
요자쿠라 "뭐, 뭐하는기고!!"
한조 "화가나면 사투리녀가 되는건가 이건 끝내주는구먼"
그리고 시키상에게.
덤으로 미노리상까지.
한조는 연달아 가슴을 주무른다.
저항하고 싶어도 한조의 움직임이 너무 빨라 어쩔 도리가 없다.
유미 "이 비겁한 놈! 비열한 선닌!"
내가 큰 소리를 치자 한조는 그제서야 움직임을 멈췄다.
한조 "비열한 선닌이라니 너무하는구만"
유미 "할아버지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한조는 악의 존재를 묵인하는 선닌이라고. 바로 그 말대로. 그 품성비열한 소행, 우리들의 순수한 선닌과는 전혀 다릅니다!"
나의 말을 듣고 있는건지 아닌지 한조는 얼빠진 표정으로 입을 우물거리고 있다.
정말로 이런 사람이 할아버지의 라이벌이었던 것인가.
한조 "그런데 말이다, 그 비열한 시노비에게 만지작 만지작 당하고있는걸 봐선 너희도 어엿한 선닌이라고는 부르지 못하는게 아니더냐?"
한조는 또 입을 우물거리고 있다.
아무래도 뭔가 먹고있는 듯 하다.
잘 보니 입 주변이 하얗게 되어있다.
미노리 "유, 유미쨩…… 저 사람이 먹고있는거…… 설마……"
미노리상의 말을 듣고 나는 당황하며 손가방 안을 보았다.
유미 "……없어. 하나도 없어요!"
손가방 안은 텅 비어있었다.
한조가 우물우물거리며 먹고 있었던 것은 내가 가지고 온 딸기 찹쌀떡이었던 것이다.
유미 "돌려주세요! 딸기 찹쌀떡 돌려주세요!"
한조 "그건 무리다. 전부 다 먹어버렸으니깐"
한조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뱉었다.
나는 화가나 피가 역류할 것 같았다.
유미 "이제 절대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승부를 보지요! 한조!"
내가 외치면서 자세를 잡자 한조는 지루하다는 듯이 귀를 팠다.
한조 "아무리 화가 나삳고 해도 나에게는 못이긴다. 네 상대라면 손녀인 아스카가 딱 좋은 정도겠구먼"
유미 "손녀?"
한조 "아아. 지금은 한조학원[7] 2학년이다. 아스카에게 이기면 분명히 상대 해주마"
[7] 국립학조학원: 이제 곧 창립 백주년을 맞이하는 명문진학교. 하지만 실태는 국가를 위해 선닌을 키우는 시노비 학교.
하품을 섞으며 말을 끝내자, 한조는 갑자기 모습을 감추었다.
너무나도 굴욕적인 행태에 나는 입술을 세게 물었다.
이래서는 할아버지를 뵐 면목이 없다.
유미 "…여러분…… 오늘은 돌아갑시다"
내가 쥐어짜내는 듯이 말하자, 모두가 작게 끄덕였다.
학교의 시노비의 방에 돌아오자 담인교사인 왕파이[8]가 명상을 하고 있었다.
왕파이는 멋진 수염을 기른 노인이다.
노인이라고 해도 근육질에 지금도 현역이 울고갈 움직임을 보여주며 우리들에게 험한 훈련을 준다.
[8] 왕파이: 사숙월섬여학관에서 교사를 맡고있는 수수께끼의 남성.
왕파이 "어서 와라해"
우리의 기척에 눈을 챘는지 명상 자세를 한채로 입을 열었다.
왕파이 "방금 학교에서 지명이 내려왔다해. 학염제[9]를 준비한다는 이야기다해"
[9] 학염제: 정식으로 인정받은 시노비 학교끼리의 결투제. 각교에서 설정한 리더를 쓰러뜨리면 승리한다. 패배한 학교는 폐교된다.
학염제애 대한 내용은 수업에서 들은적이 있다.
시노비 학교[10]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결전으로, 학교의 존망을 걸고 시노비 학생의 대표가 싸우는 것이다.
이긴 학교는 진 학교의 교사에 불을 지를 수 있는 꽤 과격한 축제이다.
[10] 시노비 학교: 자본주의의 흐름 속에서 '기업'을 위해 일하는 '시노비'가 늘어난 것을 계기로 정부가 학교를 은신처로서 설립한 시노비의 양성기관
왕파이 "우선은 헤비죠 주변을 노리는게 어떻냐해?"
유미 "알겠습니다"
악닌의 소멸이 우리의 비원이다.
학염제는 딱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모두가 긍정해줬다.
이렇게 정정당당히 악닌과 싸울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생각이 떠올랐다.
학염제라면 선닌끼리도 싸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유미 "선생님, 한조학원에 학염제를 제안 할 수 있습니까?"
왕파이는 조금 놀란 표정을 보이더니 무언가를 생각하는듯이 보였다
유미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내 목소리에 반응하듯이 왕파이는 눈을 번쩍 떴다.
왕파이 "어중간한 관계로는 시노비의 길을 걸을 수 없다해!"
유미 "그렇다면!?"
왕파이 "선닌끼리 경쟁하는것도 학염제에서라면 문제 없다해! 마음 껏 하도록 하라해!"
나는 크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유미 "우선은 한조학원부터…… 여러분, 합시다!"
4인 "오~!"
기합이 담긴 목소리로 모두의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
한조여.
바라던 대로 손녀 아스카는 철저히 쓰러뜨려주겠다.
그리고 그 다음은 너의 목이다.
딸기 찹쌀떡의 원한은 바다보다 깊을것으로 알아라.
빛이 있는곳에 그림자가 있고.
그림자가 있는곳에 빛이 있다.
양과 음, 선과 악, 빛과 그림자…….
그 균형이야말로 이 세상을 유지하는 절대적인 이치
시노비로서 살아간다면 그 이치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과연 정말로 그런한지.
악은 선을 침식시키고, 선은 간단히 악에게 물든다.
선과 악의 균형이라는 말은 옛날 옛적 그것이 형편이 좋다고 생각한 자들의 실없는 말이 되고있지는 않은가?
그 증거로 나는 본 적이 없다.
악이 선으로 변하는 모습도, 어둠 속에서 빛을 본 적도.
지금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우리들의 증명의 이야기.
빛과 선의 세계를 증명하기위해서 목숨을 걸고 검을 휘두른다.
그리고, 바람은 한가지.
싸움의 끝에서 모두가 다시 웃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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