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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미쳐 날뛰던 이사가 침묵하자, 교실은 갑자기 확 조용해졌다.
주먹을 내지른 자세 그대로 바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나오토에게 들리는 거라곤 자신의 거친 호흡과 날뛰는 심장 소리 정도였다.
순간적으로 이해가 따라가질 못했다. 하지만 크게 어깨를 오르내리게 하며 내려다본 쪽에 이사가 반쯤 죽은 물고기처럼 경련하며 쓰러져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겨우 깊게 숨을 토해낸다.
“됐…다….”
힘을 잃은 것처럼, 내지른 팔을 떨어뜨렸다. 몇 걸음 물러나다 다리가 엉키는 바람에 걸려 넘어져 엉덩이로 바닥에 착지한다. 피로감이 엄청났다. 권태감일까. 아니 이젠 아무래도 좋다. 어쨌든 끝났다, 이긴 것이다.
보니 이사의 머리 위에는 아직 숫자가 남아 있었다. 『217』. 아직 살아있다. 나오토는 어깨로 크게 숨을 쉬며… 겨우 안심했다.
‘다행이다, 아직 살아있어… 위험한 수치지만… 죽진 않겠지.’
이사는 짜증나고 좋아하진 않는다. 하루카의 건도 카나의 건도 있다. 사도가 된 게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용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죽일 수는 없다. 살인이 하고 싶어서, 괴로움을 덜고 싶어서 여기 온 게 아니다.
하지만.
“…안 죽이는 거야?”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와, 나오토는 아직 정돈되지 않은 호흡으로 입을 벌린 채 고개를 눕히듯 하여 그 쪽을 보았다.
물은 것은 라켈이다. 격한 말투로 탓하는 건 아니라고, 나오토는 그럭저럭 이해하고 있었다.
가볍게 웃어넘기고, 어깨를 움츠린다.
“뭐야. 이 놈한테 물어볼 게 있는 거 아니었어?”
아오에 대해서, 스피너에 대해서 조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사가 중요한 단서다.
하지만 라켈은 석연찮은 얼굴로 나오토의 옆까지 걸어왔다.
“혹시, 살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야?”
“뭐? 어라, 안 돼?”
그건 예상외였다. 나오토는 웃음을 지웠다.
“저거, 저번 놈이랑은 다르게 아직 얼굴도 이사고, 그 머리에서 튀어나오는 놈도 없는 것 같은데…”
말하면서, 나오토는 흠칫했다. 무인단지의 벌레남도, 쓰러뜨렸다고 생각했더니 갑자기 머리가 갈라지고 벌레가 튀어나왔었다.
라켈도 같은 사실을 떠올린 모양이다. 두 사람은 긴박하게 경직된 얼굴을 마주보고, 동시에 이사를 돌아본다.
마침 그 타이밍을 기다렸다는 듯이 이사의 몸이 움찔움찔 하고 크게 떨려 튀어오른다. 그리고 줄에 매달린 인형처럼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위험해!”
멍해져 있던 나오토는 바닥을 치듯 하여 일어나 라켈을 꾹 하고 등 뒤로 밀어 넣었다.
하지만 그 순간, 생각도 못 하던 난입이 들어왔다.
무수한 메마른 파열음―.
그와 동시에 나오토의 눈앞에서 일어선 이사의 몸이 경련하듯 떨었다. 놈의 사지에서 고기와 체액이 터진다.
“뭔…!”
비명도 없이, 이사는 몸을 일으킬 때와 같은 기세로 다시 바닥에 드러누웠다. 기분 나쁜 벌레의 체액이 교실 바닥을 더럽힌다.
그리고, 아까 전 나오토가 부순 입구에서 전신을 검은 장비로 굳힌 인물들이 잔뜩 달려 들어왔다. 마치 경찰 특공대 같다. 머릿수는 약 10명. 그들의 손엔 흉흉한 총기가 들려 있고, 재빠르게 교실의 네 구석에 몇 명씩 진을 치고 그 총구를 일제히 들어올렸다.
방금 들리던 파열음은 총성이었다.
빨간 레이저 포인터가 다음 표적을 노린다. 작고 빨간 점이 모인 건 라켈에게였다.
숨을 삼키고, 나오토는 다시 라켈을 등으로 감싼다. 몇 개의 빨간 점이 표적을 찾아 방황한다.
그러는 와중에 장소를 잘못 찾은 듯한 목소리가 찾아왔다.
“어머~, 이것 좀 봐, 교실이 엉망진창이잖아~.”
들려온 목소리에 나오토는 철렁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부자연스럽지도 않다. 완전히 그 존재를 잊고 있었다만, 감시한다고 했었다.
유리 조각이나 부서진 책상으로 어질러진 학생회실 안에 깊은 슬릿이 들어간 타이트스커트와 하이힐이라는 차림으로,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낙천적인 불평을 흘리며 들어온 건….
“우훗, 나오토 군. 나 왔어.”
가볍게 주니 손을 뺨에 대고 어깨를 들어 올리며 천진한 표정을 짓는 건, 미츠루기 기관의 히카가미 키이로였다.
나오토의 등 뒤에서 라켈이 움찔 하고 몸을 경직시킨다.
“아, 이제 여긴 됐어. 빨리 정리 좀 시작해 줄래?”
키이로는 주변에 진을 친 검은 그림자들에게 팔랑팔랑 손을 흔들며 나오토를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담백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이상한 특공대원들은 평소 훈련이 잘 되어있음을 느껴지게 하는 움직임으로 라켈에게서 빨간 포인터를 치우고 총을 거둔 뒤 재빠르게 복도 저편에서 무언가를 유도해 온다.
약간 늦게 나타난 건, 이번엔 흑이 아니라 백. 백의와 하얀 고무장갑, 하얀 모자에 마스크라는 차림의 3명의 남자들이다. 그와 함께 병원에서 쓸 듯한 들것이 옮겨져 오고 백의의 남자들은 그 위에 이사의 몸을 들어 올려 태웠다.
“자, 잠깐 기다려봐, 그 놈은…!”
묵묵히 진행되는 작업에 나오토는 묘한 초조함을 느껴 멈춰 세웠다.
하지만 그 앞을 가로막듯 키이로가 나선다.
“야, 비켜…”
“아까 그거, 굉장했어…”
목소리를 흩트리는 나오토를 막아서서 키이로는 황홀하게 열을 띈 음색을 흘렸다.
눈가는 희미하게 상기되어 분홍빛을 바른 듯한 색을 띄고, 가늘게 열린 입술은 어딘가… 어딘가 색욕을 이끌어내는 것 같다.
후우, 하고 떨리는 한숨을 괴로운 듯 흘리고 키이로는 구부린 손가락을 나오토의 팔에 기게 했다. 휘감듯 오른손 손가락을 잡고 꾹 강하게 자신의 가슴에 안는다. 풍만한 가슴에 나오토의 손을 파묻어 부드러운 살 사이에 끼우곤, 다가가듯 나오토에게 몸을 기댔다.
“자, 똑바로 만져봐. 두근두근 하는 거, 느껴져?”
남자는 가질 수 없는 그 탄력에 삼켜질 것 같아 나오토는 순간적으로 손을 빼려고 했다. 하지만 키이로는 꽉 하고 나오토의 손을 안고 놓아주지 않는다.
키이로가 말하는 대로, 꽉 눌린 가슴 밑에서 쿵 쿵 하고 이상하게 빠른 고동이 느껴졌다. 도저히 평상시의 그것이 아니다. 흥분하고 고양된 심음이 나오토의 손바닥의 감촉에 점점 튀어 오른다.
“아아… 정말, 나오토 군 때문에 나, 큰일 났다니까…”
재촉하듯 「응?」하고 유혹하곤 키이로는 가슴에 안은 나오토의 손을 점점 아래로 미끄러뜨리기 시작했다. 유방에서 떨어져 늑골 사이의 무방비한 배를 따라, 그 쯤에는 나오토의 손을 뒤집어 손가락을 아래로 향하게 하며 배꼽을 지난다. 부르르 몸을 떤다.
“하아… 와 줘… 나오토 군의 『블러드엣지』로, 나를 베어내 줘…”
“『블러드엣지』?”
들어본 적 없는 말에 나오토는 어렵게 얼굴을 굳힌다.
“응, 그래…”
도톰한 입술을 반쯤 열고 약간 흐트러진 한숨을 애달프게 헐떡이며 키이로는 나오토의 손을 하복부로 이끌었다.
그 순간, 나오토는 힘껏 손을 당겨 키이로의 손을 떨쳐낸다.
“앙, 안 돼.”
하지만 곧바로 다시 붙잡혔다. 장난감이라도 빼앗긴 듯한 토라진 목소리를 내며 끌어안듯 하여 가슴 아래에 가둔다. 전처럼 간단히 놓아줄 생각은 없는 듯하다.
“…놔라.”
나오토는 위협하듯 키이로를 노려보았다.
키이로는 입술을 좁히듯 하며 웃었다.
“다 보는 데서 하는 건 싫어? 난 상관없는데… 부끄럼쟁이구나.”
“뭔 소리야. 됐으니까 놓으라고.”
싫은 느낌이다. 너무나 싫은 느낌에, 나오토는 콧등에 주름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그런 부정적인 표정에마저 뺨을 물들이고, 키이로는 한 번 눈을 깜박이더니 아양 속에 번쩍이는 듯한 날카로움을 내비쳤다.
“있지… 저 이사란 남자, 살려 줄까?”
유혹하듯이 속삭이고 립스틱을 바른 입술을 핥는 키이로에게, 나오토는 당황과 의아함의 눈빛을 향했다. 나오토 뒤에선 하루카 쪽으로 뛰어 돌아간 라켈도 믿을 수가 없다는 얼굴로 키이로의 동향을 살피고 있다.
그 쌍방에게 시선을 던지며 키이로는 나오토의 귓가에 도톰한 입술을 가까이 했다.
“살리고 싶지? 나오토 군의 부탁이라면 특별히, 좋아. 침식도 아직 대응 가능한 레벨이고, 치료도 부탁할 수 있어. …나오토 군이 원하는 것, 뭐든지 해 줄게.”
“지… 진짜야? 살릴 수 있어?”
“후훗, 대단하지? 이것이 『조직의 힘』이야. …어디 사는 무능한 계집애하곤 달라. 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의 레벨이 완전히 다르다구. 흡혈귀랑 똑같이 취급하면, 곤란해.”
일부러 들리게 말하는 것이리라. 키이로는 나오토에게 속삭이면서도 라켈에게까지 충분히 닿는 음량을 골랐다.
라켈은 한 번 나오토를 보고, 표정을 숨기듯 고개 숙였다. 나오토에겐 보이지 않았지만 그 작은 입술을 분함을 삼키듯 깨물고 있었다.
틈을 두고 짧게 웃고, 키이로는 가볍게 손을 들었다. 그것을 보고 지시를 기다리고 있던 백의 차림의 남자들은 들것에 실린 이사를 재빠르게 학생회실 밖으로 옮긴다. 어디로, 무슨 목적으로 데리고 가는 건가. 스피너의 사도가 된 그를 그저 치료만 하기 위해서, 라고는 나오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아, 맞다맞다. 그리고 이거, 나오토 군에게도 보여줄게.”
아까까지 띄고 있던 음탕한 열을 일부 지우고, 키이로는 소녀 같은 표정을 짓고는 검은 옷차림의 병사 하나에게 지시해 자그마한 태블릿 단말을 가지고 오게 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화면을 조작해, 한 동영상 파일을 재생시키고, 나오토에게 딱 몸을 붙이고 그 동영상을 보여준다.
기억에 있는 방이 비친다. 그리고 그 방에서 기억에 있는 어떤 인물 두 사람이, 기계를 통과해 약간 흐려진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자, 뭐 하는 거야!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는지 말해봐! 이 돼지!』
『네에에엣! 더, 더 때려주세요, 카나 님!』
『천박한 돼지가 사람 말로 지껄이지 마! 돼지는 돼지답게 울라고!』
『꾸우우울! 꿀, 꾸힉――!』
『너 같은 추접한 돼지한텐 좀 더 벌이 필요하겠네. 자, 더 울어봐!』
『꾸, 꾸히이이이익!』
펼쳐지고 있던 건 그림으로 그린 듯한 SM쇼였다. 채찍을 휘두르며 큰 소리로 웃는 검은 머리카락의 여왕님이 누군지, 격렬하게 맞고 기쁨에 몸을 떨며 네 발로 기어 다니는 남자가 누군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건.
‘이건… 말 그대로 『여왕』이구만…’
채찍을 휘두르는 모습은 너무나도 힘이 들어가, 강제로 시켜서 하는 것 치고는 어딘가 즐거워도, 보였다.
“이거 말고도 잔뜩 있다~. 어떤 게 보고 싶어?”
아래쪽에서 올려다보며, 달콤한 목소리로 키이로가 묻는다.
나오토는 한 걸음 몸을 빼고 질색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사양하겠습니다.”
“어머 그래? 아쉽네, 훠~얼씬 과격한 거 잔뜩 있는데.”
“…전부 본 거냐.”
전부라고 하면 얼마나 되는 건지 감도 안 잡히지만, 즐거워 보이는 키이로의 말투로 보자니 앞으로 한 편 두 편 같은 숫자가 아닌 것은 틀림없을 것 같았다.
그건 그렇다 쳐도 이사의 취미엔 기가 막혔다.
빙글 화면을 나오토에게 향하고, 키이로는 태블릿 너머로 짓궂게 눈을 빛냈다.
“그럼, 이 영상은 미츠루기 기관에서 보존해 둘게.”
“보존? 처분 안 하고?”
나오토는 꾹 하고 눈썹을 좁혔다. 당연히 처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키이로는 묶어 올린 머리카락을 좌우로 흔들며 고개를 젓는다.
“만일의 경우를 위한 보험이야. 키리시마 카나가 스스로 사태를 폭로하는 일은 없겠지만, 그녀의 부모님이 소란이라도 피우면 귀찮아지니까.”
마치 그것이 나오토를 위한 것이라도 되는 듯한 말투로 말한다.
즉 이 동영상을 공개하는 게 싫으면 쓸데없는 사건은 만들지 말라는 것. 그런 재료로 사용하려는 모양이다.
아마 키이로 정도면 키리시마 카나의 양친은 물론 친족까지 어떤 인물이고 어떤 경향이 있는지 조사를 끝내뒀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미츠루기 기관과 키이로라는 여자가 무서울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키리시마 선배는?”
나오토는 체념한 듯한 마음으로 키이로에게 물었다.
흐느껴 울던 그녀를 자신은 이사의 맨션 앞에 내버려두고 와 버렸다. 하지만 그 부분의 『백업』도 빼놓지 않고 키이로가 수배해 뒀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물론, 미츠루기 기관에서 보호하고 있어. 아, 물론 이 교실도 내일까진 원래대로 되어 있을 테니 안심해.”
싱긋 하고 미소 짓고 키이로는 태블릿을 가까이 있던 검은 옷의 병사에게 돌려준다.
그것을 흘긋 곁눈으로 보고 나오토는 주변을 빙글 돌아봤다. 또 한 가지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안 왔네, 그 녀석들.”
“그 녀석들이라니?”
“발켄하인이랑 레리우스 말야.”
그 심상치 않은 전투력을 가진 둘이라면 이사 따위는 몇 초 만에 일어설 수도 없는 지경으로 때려눕힐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나오토는 자신의 약함을 아플 정도로 느꼈다. 손끝이 오그라든다.
조용히 무력감을 주먹 안에 쥐어 찌부러트리고 있던 나오토를 바라보며 키이로는 과장스런 몸집으로 어깨를 수그려 보였다.
“클라비스 알카드라도 오면 바로 부르겠지만, 이런 잔챙이 한 마리 때문에 그 사람들을 불러내다니 예산 낭비야. 그 사람들, 비싸다구.”
‘…비싸구나.’
생각도 못 하던 식으로 돈 얘기로 흘러들어, 나오토는 무심코 쓴웃음을 지었다. 『불사자 사냥꾼』이 돈 받고 하는 일인 줄 몰랐다. 용병 같은 것일까. 그 괴물 2인조가 연간 수입이니 보너스니 신경쓰려나 하고 상상했다가, 웃었다.
하지만 나오토는 쓴웃음을 한숨으로 바꿔 한 번 크게 어깨를 떨어뜨렸다. 모든 것이 키이로 생각대로 움직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실에 매달려 춤추고 있는 감각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달리 의지할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여러모로 고맙구만. …그래서, 조건은?”
“조건?”
퐁 하고 눈을 크게 뜨는 키이로에게 나오토는 화난 듯한 시선을 향했다.
“이런 장면에서 슬슬 『교환조건』 같은 게 나올 즈음이잖아.”
이사를 치료하고, 카나의 동영상을 확보하고, 카나 본인도 보호한데다가 파괴된 교실까지 고쳐준다. 그 모든 것이 그저 호의라곤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키이로는 생각도 안 했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입가에 손을 대고 쿡쿡 웃고는 그 손을 나오토의 뺨에 대었다.
“정말, 나오토 군도 참. 말했잖아? 난 나오토 군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정말로, 뭐든지. 지금 바로 여기서, 내 모든 것을 너에게 줘도 좋아.”
이야기하는 키이로의 말은 천천히 다시 열을 담기 시작한다.
키이로는 스윽 하고 손을 미끄러뜨려 나오토의 목에 걸었다. 발치부터 달라붙듯이 나오토을 끌어안기 시작한다. 그녀가 미소 짓자, 달콤한 숨이 귀에 걸렸다.
“하지만, 그러는 편이 나오토 군 취향이라면, 이번 일은 『빚』으로 해 줄게. 갚고 싶으면, 그렇지… 지금보다 더, 오싹해질 정도로 강해져 줘.”
강하다, 라는 건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가. 말하지 않은 채, 키이로는 그 때까지의 점착질적인 접촉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가볍게 나오토에게서 떨어졌다.
몸을 비틀고, 순수한 소녀 같은 미소를 향한다.
그 미소에 나오토는 어째선지 오한을 느꼈다. 나오토를 신뢰해 마지않는 얼굴이었다. 어째서 그런 얼굴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이 녀석이랑 만난 건, 이걸로 두 번째잖아…?’
아무리 나오토가 연하라고 해도, 두 번 만난 상대에게 보일 수 있는 얼굴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저 남자 문제는 나한테 맡겨. 뭔가 알아내면 연락할게. …아무것도 못 알아내도 연락할 지도 모르지만.”
기분 좋게 목소리를 높인 키이로는 바이바이 하고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아직 교실에 남아 있는 검은 옷의 병사들을 이끌고 교실에서 나간다. 그 때였다.
“나오토!”
갑자기 라켈이 경계의 목소리를 냈다고 생각했더니, 복도에서 연속해서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깨진 것은 조명이다. 순식간에 복도가 어둠에 잠겨든다.
“뭐지?!”
복도에서, 먼저 나가 있던 검은 남자들이 술렁이는 소리가 들린다. 미츠루기 기관이 한 짓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오토는 서둘러 복도로 뛰어나간다.
복도의 작은 창문에서는 희미한 달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너무나도 미덥지 못한 옅은 빛 속에서, 몇 명의 병사들이 적을 찾아 총구를 움직이며 우왕좌왕 하고 있었다. 그 등 뒤에서… 서서히 어둠이 부풀어 오른다.
“거기, 위험해!”
외친 나오토의 목소리는 아무런 의미를 낳지 못했다. 부풀어 오른 어둠은 무거운 모래주머니라도 질질 끄는 듯한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미츠루기 기관의 병사들을 삼켜 버린다.
흐린 비명과 허무한 총성이 한 발 나고, 그 비명마저 어둠에 삼켜진다. 천정까지 자라나 복도를 가로막은 어둠은 그 안쪽에서, 뿌득 뿌득 하고 딱딱한 것을 씹는 듯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사람을… 먹고 있어…?’
갑자기 그리 생각하자, 나오토는 주춤해서 몇 걸음 물러난다.
이윽고 어둠은 뭔가에 빨려들 듯이 작아지다 사라졌다.
아까까지 있던 남자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대신에, 그곳에는 한 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똑바로 관찰하기에는 부족한 어슴푸레한 달빛. 그 속에 멈춰선 남자를, 나오토를 쫓아 복도로 나온 라켈이 숨을 삼키고 바라보았다.
그 라켈을 보고, 남자는 웃는다. 씨익, 하고 입가를 당기고, 오페라라도 노래하는 듯한 과장스런 동작으로 가늘고 긴 양팔을 크게 벌렸다.
“아아… 생각하던 대로야,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역시 당신에겐 달빛이 어울려. 사실은 좀 더 엄숙한 달빛 아래에서 만나고 싶었습니다만… 그럼에도 이 향기로운 냄새, 눈부신 모습, 감동에 이 몸이 떨리는 것을 아시겠습니까? 아아,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라켈 알카드』.”
억양 풍부하게 노래하듯 말하는 남자의 목소리는, 밤의 그림자가 짙은 탓에 표정으로 알 수 없어도 억누를 수 없는 흥분에 떨고 있는 것을 느끼게 했다.
남자는 삐쩍 마르고 긴 몸에 가슴 가득 숨을 마셨다. 이 장소에 가득한 라켈의 기척을 남기지 않고 폐 속에 넣겠다는 듯이. 그리고.
“초대받은 대로, 찾아왔습니다. 제가 바로 『스피너 스페리올』입니다.”
넓은 손을 가슴에 대고, 스피너 스페리올은 라켈을 향해, 깊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4
기분 나쁜 남자였다.
옅어도 빛은 빛이다. 하얀 달빛이 들어오는 탓에 신카와하마 제 1고등학교 복도엔 여기저기 그림자가 생겨 있었다. 하지만 그 그림자보다도 더욱 깊게, 놈은 거기 있었다.
키는 크고 체구는 마른 형. 손발은 가늘게 그림자를 늘린 듯해, 정말로 여기에 실체가 있는 건지 의심스럽다. 잿빛 머리카락은 뒤쪽으로 단정하게 빗어 붙이고, 몸에 걸친 검은 옷은 어둑어둑한 복도에서도 상당한 것이라는 걸 느끼게 하는 질감이었다.
“저게… 스피너 스페리올….”
짜내듯이 나오토는 목소리에 내었다.
곁에 있던 라켈이 신중하게 숨을 들이쉰다. 자신을 재촉하듯 작은 손으로 주먹을 만들어 쥐고, 겁낼 것 따윈 없다는 태도를 보이듯 의연하게 스피너를 바라본다.
그 시선을 받으며, 스피너는 완만한 동작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그리고선 고개를 꼬았다.
“헌데… 쿠로가네 나오토는 어디에?”
어디까지나 예의바르고 정중하게, 공주님이라도 알현하는 듯이 스피너가 묻는다. 길고 날카로운 시선이 라켈을 빤히 바라보았다. 보기 안 좋은 희푸른 얼굴엔, 한쪽 뺨을 묻듯 기괴한 문양으로 문신이 들어가 있다.
라켈은 가볍게 턱을 움직여 곁에 있는 나오토를 가리켰다.
“그야.”
“…예?”
두 박자 정도 비우고 스피너가 곤혹스럽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날카로운 턱을 움직이며 말을 잃고, 그리고서 가느다란 눈동자에 주저를 담아 다시 물었다.
“라켈 알카드. 면목 없습니다만, 쿠로가네 나오토는 어디에?”
나오토의 이름을 호칭하며, 그는 한 번도 나오토 쪽을 보지 않았다. 애초에 『쿠로가네 나오토』에서 예외로 친 것인지, 신경도 안 쓰는 기색이었다.
‘왜 내 얘기가 나오는데…?’
나오토는 스피너와 직접 관련된 적이 없을 터이다. 스피너는 라켈을 쫓고 있고, 라켈이 스피너를 찾고 있다. 그런 관계도였을 터. 예상도 하지 못한 라켈과 스피너의 대화에 곤혹을 느끼는 와중에, 라켈이 나오토의 팔을 붙잡아 꾹 하고 가까이 당겼다.
“그가 쿠로가네 나오토야.”
그리 고한 다음 순간.
나오토의 몸은 뭔가 무거운 것에 맞아 복도 벽에 강하게 때려 붙여졌다.
“으그아악…”
상황이 이해되질 않는다. 너무나도 뜬금없는 충격에 제대로 된 낙법도 취하지 못하고 나오토는 뒤통수를 창가 아래에 처박았다. 등으로 벽과 뼈에 금이 가는 것을 느꼈다.
시야 구석에서 불꽃이 튄다. 한 순간 어둠에 떨어진 듯한 시야가 멍하니 되살아나자, 나오토는 시선 끝으로 본 스피너의 표정에 숨을 멈췄다.
“…내 라켈 알카드를 함부로 만지지 말아 줬으면 좋겠군… 천한 것이.”
눌러 죽인 목소리는 심상치 않은 분노를 품고 있었다. 나오토를 노려보는 눈은 확 하고 열려 도저히 제정신이라곤 생각되지 않는 살기를 한 조각의 용서도 없이 내뿜어든다.
“아아, 역겨워…. 네놈 같은 쓰레기가 라켈 알카드를 만지다니 만 번 죽어 마땅한 중죄다. 고작 사도 한 마리 처치했다고 해서 우쭐하지 마라, 쓰레기 놈아…!”
주륵 하고 그림자를 당기듯 스피너가 크게 발을 내딛는다.
“참을 수 없군. 참을 수 있을 리가 없어… 내 라켈 알카드가 네놈 같은 쓰레기가 내뱉는 숨에 더럽혀진다니. 그렇게 되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으깨 버려야…”
중얼중얼 내뱉는 목소리는 동시에 낭랑하게 복도에 울린다. 언밸런스하게 긴 팔이 흔들 하고 불온하게 올라갔다. 그것에 호응애, 스피너의 등 뒤에서 어둠이 뭉클 하고 일어선다.
아까 그, 병사들을 먹어치운 어둠이다.
위험하다. 나오토는 바닥을 차고 일어서려고 했다. 하지만 몸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 몸이 한계였다. 몸을 일으키려고 바닥을 미는 손이 힘없이 떨린다.
“나오토, 도망쳐!”
날카롭게 라켈의 목소리가 날아든다. 그 한마디가 쓸데없이 스피너의 분노에 부채질을 한 모양이다. 어둠이 부푸는 기세를 늘리고, 복도를 지치며 나오토에게 육박한다.
하지만 그 어둠을,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날아온 무언가가 베어내 무산시켰다.
천천히, 나오토와 스피너 앞에 키이로가 가로막아 선다.
“제멋대로 구네. 그쪽이야말로 고작 『마술사』가 우쭐해하지 마. 『해체』해 버린다?”
부적절하게 웃음을 띤다.
무엇이 어둠을 베어 가른 것인가, 나오토는 눈으로 쫓을 수가 없었다. 아까 이사를 무력화시킨 총기가 아니란 건 확실하다. 좀 더 불가사의한 것… 드라이브다.
흥이 깨진 건지, 스피너는 격앙을 눈동자 안쪽에 구겨 넣고 새로운 방해꾼을 흘끗흘끗 바라보았다. 실로 시시하다는 듯, 가늘고 긴 손가락을 문신이 새겨진 뺨에 갖다 댄다.
“이 드라이브… 미츠루기 기관의 키이로로군요.”
담백하게 내뱉고, 스피너가 눈을 감고 웃었다. 비웃음이었다.
“…『모자이크』가 허세 부리긴.”
마치 혼잣말처럼 흘린 한마디에, 키이로의 낯빛이 바뀌었다. 순식간에 그 표정을 덮은 것은 살의다.
폭발하기 직전처럼 부푼 살의가 무수히 공기를 찢는 소리로 바뀌어 스피너를 덮친다.
하지만 스피너는 가볍게 바닥을 가죽 구두로 두드려 발치에서 어둠을 불러냈다. 물거품이 파열하는 것을 역재생으로 보는 것처럼, 어둠이 빙글 하고 구체를 형성해 스피너를 내부에 집어 삼킨다. 그 어둠에 막혀 키이로가 내쏜 듯한 무언가는 사라져 버렸다.
재차 어둠은 몸을 뒤집듯 스피너의 모습을 복도에 드러낸다. 얼굴에 문신을 넣은 기분 나쁜 남자는 어둠을 걸치기 전과 조금도 태세를 바꾸지 않고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방어한 모양은 아닌지, 오른쪽 어깻죽지에 깊게 베인 상처가 생겨 있다.
그 상처를 잘 보면 무수한 구더기 같은 벌레가 모여 고기를 씹는 듯한 소리를 내며 베인 몸을 수복하고 있음을 알았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공격적으로 눈초리를 올리고 표정을 긴장시키며 키이로는 자세를 잡듯 양팔을 벌렸다.
“지금 당장 『섬멸』해 주지…!”
“이런, 이런….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 건지…. 주제를 모르는 꼭두각시는 불쌍하군요.”
한꺼번에 상대할 생각도 없는 건지, 스피너는 유연한 움직임으로 한 떨기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돈했다.
하지만 그의 발치에는 어둠이 아직 서려 있다. 힘을 쓰기에 모자란 상대라곤 해도 놓아줄 이유는 없다. 주인의 의사에 따르듯 어둠은 스피너의 발밑에서 경련했다.
거기서―.
“기다려.”
흔들림 없는 라켈의 목소리가 늠름하게 울린다. 목소리엔 무시할 수 없는, 무시하게 두지 않는 힘이 있었다. 그것은 마법이나 드라이브와는 다른, 라켈이 가진 『진홍의 마안(슬레이브 레드)』와도 다른, 라켈 알카드로서의 목소리였다.
“지금은 물러나도록 해, 스피너 스페리올. 당신과 싸우는 건… 지금이 아니야.”
강하게, 예언이라도 고하는 듯한 무거움을 담아 라켈은 스피너에게 이야기한다.
그 억지스러우면서도 거역할 수 없는 압력을 띈 개입에, 키이로가 목소리에 날카롭게 가시를 돋쳤다.
“방해하지 마… 계집.”
거기엔 평소의 고혹적인 여유는 없다. 금속을 떠올리게 하는 차가운 칼끝 같은 목소리와 안광은, 나오토가 상상도 해보지 않은 키이로의 모습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공격을, 하고 적의를 내비치는 키이로에 비해 스피너는 라켈의 한마디에 완전히 눈앞의 여성을 존재부터 잊은 것 같았다.
시원하게 발밑에서 어둠이 사라지고, 본인은 아무래도 상냥한 태도를 보이려고 한 모양이지만, 기분 나쁘게 불온한 미소를 띠었다.
“알겠습니다, 라켈 알카드. 애초에 오늘 밤은 인사를 하러 왔을 뿐.”
말하고, 예의바르게 다시 인사한다. 몸을 기울이고 고개를 숙인 채로, 스피너는 고개만을 들어 라켈을 보았다.
그 시선은 마치 거미의 실 같았다. 달라붙은 실은 먹잇감을 먹잇감이라고 받아들이면서도 그 아름다운 날개에의 적의를 나타내듯 고통스러울 정도로는 죄지 않는다.
씨익 하고, 눈이 웃었다.
“다음번에 만날 때는, 반드시 진짜 『쿠로가네 나오토』를 데려와 주시지요. 저를 시험하신 것일 테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런 쓰레기로는, 저도 실망스러우니까요.”
무대 연극 같이 그리 고하고, 스피너는 인사하는 자세인 채로 모래주머니를 질질 끄는 듯한 소리를 내며 자신의 그림자 속으로 가라앉는다. 그리고 그대로, 기척도 사라졌다.
학교는 다시 한 번, 재차 고요함을 되찾았다.
복도에는 산산이 흩어진 봉 모양 조명기구의 파편이, 저 멀리까지 이어져 있다.
점심때를 흐리게 가리고 있던 구름은 이미 꽤나 바람에 흘러가 개인 모양이다. 아까보다도 밝게, 달빛이 비쳐든다.
하얀 달빛을 받으며, 키이로는 고개를 숙인 채 나오토를 돌아보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미안, 나오토 군. 나도 가볼게….”
그녀답지 않은 약한 목소리. 양손으로 주먹을 쥐고, 그것을 눈물을 참듯 작게 떨며 키이로는, 마치 무언가로부터 얼굴을 피하듯 빠른 발걸음으로 나오토 앞에서 사라졌다.
나오토는 그 모습을 망연하게 떠나보낸다.
기분 탓인지도 모른다. 유리조각이나 달빛을 잘못 본 것일지도 모르지만… 희미하게 들여다보인 키이로의 뺨은, 눈물로 젖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미츠루기 기관의 인간들은 모두 키이로를 따라 사라졌다. 주변은 무참히 파괴당한 채지만, 아마 내일 수업 시작하기 전까지는 정말로 원래대로 고쳐져 있을 것이다. 언젠가, 라켈과 벌레남이 날뛰며 통과한 주택가를 하룻밤만에 원래대로 고쳐낸 것처럼.
문득 바로 근처에서 빠작 하고 유리조각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나오토가 고개를 들자, 거기엔 라켈이 있었다.
“꼴사납네.”
질린 듯이 말하며 라켈은 나오토에게 손을 내밀었다. 달빛과 많이 닮은 하얀 손. 그 너머엔 역시나 달빛 색 피부를 가진 라켈의 얼굴이 있고, 언제나 불손한 표정을 띠던 그 입가는 희미하게 웃음을 담고 있었다.
‘아… 웃는, 구나.’
그러고 보니 웃는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그리 생각하며, 나오토는 빨려들 듯 라켈의 손에 자신의 손을 겹친다.
스피너가 말했다. 라켈에겐 달빛이 어울린다고. 놈의 의견인 것이 내심 불만이지만, 그것에는 찬성하지 않을 수 없다.
달빛을 받으며 손을 뻗은 라켈은 아름다웠다. 금색 머리카락이 달빛을 반사해 환상적으로 반짝인다. 머리카락보다도 약간 깊은 색의 눈동자는 이 세상의 것이라곤 믿겨지지 않는 아름다운 보석 같았다.
“…뭘 하고 있어?”
손을 잡은 채 일어나려고 하지 않는 나오토를 보며 라켈이 웃음을 거두고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좁힌다. 나오토는 핫 하고 정신을 되돌렸다. 완전히 빠져들어 있었다.
“미, 미안. 누구 오기 전에 빨리 하루카 데리고 집에 가자.”
서둘러 얼버무리고 나오토는 라켈의 손을 당기며 일어나 학생회실 안으로 들어가 하루카와 그녀에게 걸쳐 두었던 교복 웃옷을 회수했다.
이사와 스피너, 두 괴물에게 습격당해 교복은 완전히 너덜너덜해져있었다. 이 셔츠와 바지는 이제 못 쓰겠다. 새로 산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의외로 비싸지… 교복이란 거.’
몸처럼 옷도 원래대로 돌아오면 더 편리할 텐데. 그런 적당한 생각을 하며 아직 의식이 없는 하루카를 등에 업는다. 무사했던 교복 웃옷은 하루카에게 입혀 주었다.
“가자.”
“응.”
벌써 저녁 시간은 완전히 지나갔다.
학교를 나와 되도록 사람 눈이 닿지 않게 신경 쓰며 나오토와 라켈은 귀갓길에 오른다.
…생각해 보니 긴 하루였다.
점심에 학교에서 카나에 대해 물어보고 다니던 때에는 설마 밤에 이런 빅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하늘엔 아직 구름이 남아 있지만, 밝은 달빛으로 넘친다.
초승달도 반달도 아닌 어중간한 형태의 달이 우아하게 지상을 내려다본다.
“그러고 보니…”
평소엔 잘 쓰지 않는, 통행이 적은 우회로를 걸으며, 나오토는 문득 생각나 옆에서 걷는 라켈에게 얼굴을 향했다.
긴 금발을 흔들며 라켈이 돌아본다.
“왜?”
“아니, 왜 스피너는 아까 내 이름 같은 걸 알고 있었대? 이사한테서 듣기라도 했나?”
못해도 학생이니 그런 정보가 전해졌어도 이상하진 않지만, 이사가 나오토의 이름을 스피너에게 알릴 필요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뭣보다 라켈이 나오토와 살고 있다는 사실이 학교에 알려진 건 이사가 학교를 쉰 이후다.
아아, 하고 라켈이 목소리를 냈다. 무슨 소린가 했더니. 하는 느낌으로.
“전에 발켄하인 헬싱과 싸웠을 때, 내가 벽에 무언가 써 두었던 걸 기억해?”
“어, 기억나. 읽진 못했지만.”
그 오락실 뒤편에 있는 자동판매기 옆이다. 애초에 자동판매기는 발켄하인에 의해 무참하게 파괴된 뒤지만.
라켈은 허공에 손가락을 흔들며 글자를 쓰듯이 움직였다.
“『이 나를 원한다면 하인인 쿠로가네 나오토를 쓰러뜨리도록. 그것을 해낸다면, 나는 당신의 것이 되어 주겠어. 라켈 알카드』…이렇게 썼어.”
“…네?”
잘못 들은 건가. 지금 라켈은 『쿠로가네 나오토를 쓰러뜨리도록』이라고 하지 않았나.
어떻게 된 거냐 하고 나오토가 라켈의 얼굴을 들여다보자, 라켈은 한 순간 흐흥 하고 우월감을 풍기는 웃음을 띠었다.
“그건 그렇고 곤란하게 됐네. 터무니없는 오해를 시킨 모양이야. …스피너는 완전히, 아버님 레벨의 상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으니.”
희미하게 보인 웃음을 지우고, 라켈은 고민하듯이 허리와 입가에 손을 대었다. 규칙적으로 걸음에 맞춰 그녀의 등에서 긴 포니테일이 꼬리처럼 흔들린다.
“어쨌든 그렇게 된 거야. 부디 힘써 줘, 하인.”
아무런 책임을 느끼지 않는 말투로 그리 말하며, 라켈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밤길을 간다.
무심코 발이 멈춘 나오토는 그 모습을 아연히 바라보고… 잠시.
“너…”
말도 안 되는 사건의 씨앗을 멋대로 심어 주신 자칭 주인님 흡혈귀 소녀를 향해, 나오토는 주변에 왕왕 울릴 정도의 큰 소리로 외쳤다.
“너, 바보냐아아아앗!!”
울리는 목소리는 멀리 뻗어나가 달빛 부드러운 가을의 밤에 빨려들 듯 사라진다.
그것은 한 막의 끝.
그리고 한 막의 시작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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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끝났다!
하고 보니 6장 막간이 남아있음.
몰라. 내일 할 거야.
근데 이번 얀데레 크로스일러 키이로 무서워요. 책 보기 전에 일러만 봤을 땐 저거 보고 악역인 줄 알았음.
그리고 라켈과 키이로의 능력이 너무 차이남. 라켈은 이사랑 싸울때도 구석에 앉아 배리어 유지했는데. 키이로 DDDDDDD....
그러고 보니 허공에서 뭔가가 날아와 베었다니. 아무래도 키이로의 드라이브는 어디 사는 얀데레의 그것인가 보네요.
게다가 '모자이크'라는 말에 반응하는 떡밥도 뿌렸습니다. 나오토가 히카가미 라는 성에 반응한 것도 그렇고, 이 캐릭터도 떡밥이 많네요.
하권이 끝나고서도 아직 풀리지 않은 떡밥이 몇 남아있습니다. 이게 진짜 외전작이 아니라 정사편입되는 스토리라면 시리즈가 더 나오겠죠.
개인적으론 더 나와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라그x레이 좋아요.